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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흔하디 흔한 얘기일 것이다.

2017년 코인붐을 다같이 목격한 자들로서, 주변에서 한 두 명쯤 벌었다, 혹은 잃었다 하는 사람들을 봤을 것이다.

 

나 또한 그 중 하나였다.

 

17년 6월, 남들보다 조금 빨리 코인의 존재를 알게 되다

2017년 6월, 비트코인의 존재를 우연히 알게 되었다.

디씨에 급상승 인기 갤러리에 '비트코인' 갤러리가 떠있는 걸 본 것이 내 인생을 바꿔놓았다.

그 전까지는 주식은 물론, ETF나 펀드에도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던 터라

금융, 특히 파생상품에 손을 댄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그런 내가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덧 코인원에 계좌를 만들고 30만원을 입금하고 있었다.

매매는 쫄보 그 자체였다. +가 찍히면 안도의 한숨을, -가 찍히면 안절부저 못해 사고 파는 일이 잦았고,

수수료가 이득보다 더 큰 상황이 왕왕 일어났다.

 

그러던 어느날, 폴로닉스라는 외국 거래소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이 거래소에는 국내 거래소와 다르게 30여종의 다양한 알트코인이 포진해있었다.

난 맘에 드는 코인 몇 개를 골라 대충 가격을 위에 걸어놓고, 1주일 뒤에 고기가 걸렸나 확인하는 식으로 매매를 했다.

성과는 좋았다. 8일만에 41만원(중간에 입출금이 있었다)이 64만원이 된 것이다.

 

2017년 6월 코인 계좌를 트고 거래를 기록하던 습관이 있었다

신세계였다.

물론 큰 돈은 아니었지만, 대학생이던 나에게 이러한 불로소득이 생긴다는 것 자체가 신선하게 다가왔다.

나는 용돈으로 쓸 돈까지 탈탈 털어가며 코인에 돈을 집어넣고 있었다.

 

이러저러해서 6월 중순쯤이 되자, 원금 총 100만원이 코인에 들어갔다.

 

 

 

 

 

더욱 쫄보가 되다

7월 중순이 되었다.

당시 나는 통발에 고기가 잘 안잡히게 되자 다시 그 전에 쓰던 쫄보 매매법으로 매매스타일이 회귀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중국 대형채굴풀 중 하나인 비트메인 수장 '우지한(Wu Jihan)'이란 사람이 비트를 하드포크 하느니 어쩌니 하는 탓에 대단한 이슈가 되었고, 이는 큰 악재로 작용해 당시 3000불까지 갔던 비트가 1800불까지 곤두박질 쳤다.

 

내 계좌도 당연히 줄어들었다.

100만원이었던 돈은 거의 반토막이 났었고, 다시금 상승추세에 올라탔는데도 나는 자꾸만 포지션을 청산하고 있었다.

그래도 어찌저찌, 상승장은 상승장이었던지라 11월 11일이 되자 원금 100만원400만원이 되어있었다.

 

이런 쫄보도 먹여주는 장이었다

 

업비트 시작, 차익거래로 돈을 벌다

10월 25일, 업비트(Upbit)에 입성하였다.

당시만해도 비트파이넥스(Bitfinex)라는 홍콩 거래소에서 주로 거래를 하느라 업비트는 방치를 해두고 있다가,

11월 즈음 BTC마켓(코인을 원화KRW가 아닌 비트코인으로 살 수 있는 마켓)을 오픈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벤트를 하는 덕에 수수료도 저렴했다.

 

그러다가 우연치 않게, 동일한 코인이어도 BTC마켓과 원화마켓의 시세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가령, 원화마켓에서는 200,000원인 이더리움이 BTC마켓에서는 199,000원인 식이다.

그럼 나는 BTC와 원화를 반반 들고 있다가, 싼 쪽에서 사서 비싼 쪽에 팔면 0.3%~0.5% 수준의 차익을 얻는 것이다.

물론 시세가 급변하여 손해를 보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득이었다.

당시에는 API도 도입되지 않아 시세차익 봇(매크로)도 없던 시절이었다.

 

난 이 블루오션에 바로 편승하여 무서운 속도로 시드를 불려나가기 시작했다.

 

11월 11일에 400만원이었던 내 시드는 12월이 되자 1300만원까지 불어있었다.

다만, 7월, 9월에 있던 하락장에 너무 두들겨 맞은 탓에 잘 땐 원화로 시드를 들고 잤다.

 

 

 

 

보따리 거래와 시드 5000만원 돌파

당시에는 코인붐이 일자 새로운 거래소가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했고, 새로운 코인들 역시 그 거래소 사이에 우후죽순 상장되었다. 새로운 코인이 상장되면, 호가에 대부분 적정가격이 걸려있지 않았기에, 매수세에 눈이 먼 돈이 몰려들어 다른 거래소 시세보다 적게는 50%에서 많게는 10배까지 가격이 오르는 일이 있었다. 그야말로 미친 장이었다.

 

나는 BTG(비트코인 골드)가 비트렉스에 상장될 때 3배, 빗썸에 상장될 때 다시 4배까지 오르는 것을 보고, 보따리를 뒤늦게 시작하였다. 당시 빗썸에 상장된 이오스의 시세가 다른 거래소보다 높아 이오스(EOS)를 다른 거래소에서 사서 빗썸으로 보내고, 그것을 원화로 판 뒤 출금하여 다시 다른 거래소에서 이오스를 사서 빗썸에 보내는 식으로 시드를 짭잘하게 늘려갔다. 동시에 업비트 차액거래는 계속하고 있었다.

 

시드가 점점 커져 5000만원이 되었다.

하루는 차익거래를 하던 도중 PIVX(피벡스) 원화가 BTC마켓 대비 고가에 매수벽이 있는 것을 보고, BTC마켓에서 PIVX를 사다가 원화마켓에 던져 하루만에 800만원을 벌기도 하였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벌리는 돈이 사이버머니처럼 느껴졌다.

 

시드가 커지자 차익거래를 하기엔 매우 부담스러웠다. 차익거래를 하기에 호가는 고작 몇 십~ 몇 백만원 밖에 안 걸려있는데, 금액에 비해 내 시드가 더 컸기 때문이다. 그래서 1000만원만 가지고 차익거래를 했다. 그렇게 시드의 일부만 가지고 거래하다보니 시드를 늘리는 속도가 영 탐탁치 않았다.

 

어찌저찌 하여, 2018년 새해가 될 때쯤에는 시드가 5000만원이 되어있었다.

이 때, 나는 전업 트레이딩을 해야겠다고 생각하여 부모님께 독립을 선언했다.

 

 

전업 트레이더 입문, 그리고 끝없는 5000~8000의 지옥

이 곳 저 곳, 싼 원룸을 찾아보니 광교에 6평짜리 신축 오피스텔이 500/40정도 하였다.

이정도면 내 시드 대비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이라 생각해, 그 곳에서 2월부터 전업 트레이딩을 시작하였다.

 

당시 시드는 8천만원을 넘어가고 있었다.

12월 대비 알트코인들의 거래량도 줄고, 차익거래를 하는 사람들도 많아져 별 메리트가 없어 차익거래를 중단하였다.

대신, 차트 공부를 하여 엘리엇 파동과 피보나치, 그리고 매물대를 위주로 거래하기 시작했다.

 

내 매매스타일은 기본적으로 역추세매매이다. 저항이 나올만한 자리에서 숏(공매도) 스위칭을, 지지가 나올만한 자리에서 롱(현물매수 혹은 공매수) 스위칭을 하는 식이다. 이 매매 스타일은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했다.

정확한 저점과 고점을 알 수도 없을 뿐더러, 물타기를 하다간 순식간에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났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나는 리스크관리를 전혀 하지않고 풀시드를 운용했기 때문에, 천만 단위로 손익이 밀물썰물처럼 들락날락했다.

 

분명 2월엔 8천만원이었는데, 3월 하락장이 되자 시드가 5천만원까지 줄었다.

난 롱 물타기로 존버하여 4월에는 다시 시드가 8천만원이 되었다.

하지만 다시 5월 하락장에 매수 포지션을 가져가자 다시 시드가 5천대까지 줄어버렸다.

 

그렇게 시행착오를 겪고 있던 찰나에, 코인인생 전성기가 찾아왔다.

 

 

 

 

일장춘몽을 꾸다

6월이 되자 시드를 다시 8천대까지 회복했다.

당시 ETC(이더리움 클래식)가 코인베이스가 상장된다는 소식에 롱을 쳤더니 꽤나 많이 시드를 튀겼다.

비트 역시 방향을 맞췄다. 롱으로 승승장구하며 시드를 1억까지 늘렸다.

 

당시에는 비트파이넥스에서 마진거래를 주로 하였다. 비파의 레버리지는 3배까지였다.

레버리지 3배라함은, 오르면 3배 이득이요 내리면 3배 손실인 것이다.

 

비트맥스의 100배나 바이낸스의 125배를 생각하면 3배는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현물거래만 해오던 나에게 레버리지 3배는 정말 묵직하게 다가왔다. 어쨌거나, 난 레버리지로 흥하고 레버리지로 망했다.

 

시드가 1억을 돌파하고, 연이은 가격예측 적중으로 인해 10연승, 시드는 어느덧 13.3만불로 불어있었다.

원화로는 1억 5천이다. 당시 내 나이 28에 또래들은 자력으로 상상하기 힘든 만큼의 돈을 모은 것이다.

나는 이 속도라면 10억까지 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무슨 차를 살지 벤츠 e클을 알아보기도 하고, 이대로 평생 살 수 있을 것 같아 그즈음 대학교도 그만둬 버렸다.

 

하지만 어쨌거나,

출금을 해야 내 돈인 것이다.

 

7월까지만 해도 비트코인의 대세는 롱이었고,

당시 같은 팀으로 트레이딩을 하던 누군가가 숏을 외치기 시작했다.

 

난 비트가 Ending Diagonal을 그리며 8k(8000)까지 갈 것이라 예측했지만, 자꾸만 비트가 떨어진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 팀의 리더이자 몇 번 방향을 잘 맟추던 친구라 그 친구의 말에 혹했다.

 

나는 가지고 있던 롱포지션을 청산하다 못해, 숏포지션을 잡아버렸다.

그것도 6.5k에서 말이다.

 

역헤숄(Inversed Head and Shoulder)을 그리고 있던 비트는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무섭게 오르기 시작했고,

물타기에 레버리지까지 써가며 일관적으로 대응했던 내 잔고는 순식간에 줄어들기 시작했다.

 

비트가 8.4k를 찍고 꺾이기 시작하자, 나는 이번엔 롱을 잡았다.

그것이 추세전환인지도 모른 채 말이다.

 

비극의 시작이었다.

 

코인인생 종료 선언

난 삼진아웃을 당했다.

 

첫번째는 추세를 거슬렀고, 둘째는 남의 말을 들었으며, 셋째는 이러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 트레이더에게 내일은 있을 수 없었고, 잔고가 불어난다는 일은 더더욱 있을 수 없었다.

 

나는 순순히 패배를 인정해야했다.

시드는 최고점대비 반토막이 나있는 상태였다.

-50%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다시 +100%를 찍어야한다.

하지만 나는... 자신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스스로에게 다짐했던 약속들을 깼다는 것이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었다.

 

난 그렇게 2018년 8월경, 시드 8000을 마지막으로 코인인생 마감을 선언했다.

그래도 수익률 8000%의 나쁘지 않은 성과였다.

 

그 돈으로 연말에 한 달짜리 유럽여행도 가고, 일본은 스무 번을 가고, 베트남, 캐나다, 대만, 홍콩, 마카오, 중국 등 여러 나라를 여행했다. 이렇게 FLEX만 했으면 좋았을텐데, 다시 손을 대선 안 될 곳에 손을 대고 말았다.

 

2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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